관리들은 “위협”을 사용해 해운업의 넷제로 협정을 무산시킨 일이 국제 외교의 규칙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있다
복수의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이 역사적인 해운업 기후 협정을 저지하기 위해 추가 무역관세를 경고하고 다른 나라 협상단에게 개인적인 위협까지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10명 이상의 외교관과 타국 정부 관계자,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이 지난달 런던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엔이 후원한 해운 부문의 탄소중립(framework) 안건을 좌절시키기 위해 기존의 외교 규범을 무시하고 ‘강압적인 전술’을 사용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밝혔다.
국제해사기구(IMO) 본부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 미국 대표단은 아프리카 및 태평양·카리브 소국들을 상대로 협정 지지 철회를 압박했다. 협정은 선박 탄소배출에 대한 과징금을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미국 대표단은 8명 규모로 구성돼 있었다.
다섯 명의 참석자들은 일부 대표들이 휴식 시간 중에 미 관리들로부터 “미국을 경유할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거나 “미국 입국 제한이 가족에게까지 적용될 수 있다”는 식의 경고를 들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프레임워크를 ‘세계적인 사기성 녹색세금’이라고 부르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를 저지하겠다고 주장했다.
이 협정은 지난 4월 대다수 국가가 잠정 합의했으며, 법적 구속력을 지닐 예정이었지만 이번 압박 사태로 채택 논의가 1년 뒤로 연기됐다.
외교관들과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그동안 유엔 등 다자기구에 비판적이었다 해도, 이번 IMO 회의에서의 행위는 선을 넘은 것이라고 경고하며 글로벌 거버넌스에 장기적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외교관은 “마치 뉴욕 거리의 협박 같았다”고 표현하며, 미국이 비자 제한이나 항만 이용료 인상 같은 불이익을 거론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그들은 각국 대표단을 일일이 찾아가 협박하고 본국에 돌아가 입장을 바꾸라고 압박했다”고 설명했다.
IMO 회의에 오래 참여해온 한 인사는 “이처럼 기술적이고 합의 중심의 회의체가 충격에 빠진 적은 없었다”며 “이건 마치 조직폭력배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다른 나라 대표들에 대한 개인적 위협에 대한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지만, 회의 연기 표결에서 EU와 다른 입장을 취한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칭찬하는 성명을 냈다.
회의 개최 전에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미국 소비자를 부담시키는 급진적 기후정책을 추진하는 외국 관료에 대한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채텀하우스의 크리온 버틀러 글로벌경제국장은 “단기적으로는 압박이 효과를 낼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협력을 선택하는 나라가 늘어날 위험이 크다”고 분석했다.
회의에 참가한 몇몇 국가는 “주권국가 간에서는 결코 사용되어서는 안 될 방식”이 동원됐다고 비판했으나 구체적인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다.
미국의 압박은 개인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도 가해졌다. 방글라데시, 일본,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가 미국으로부터 외교적 항의문(démarche)을 받았으며, 그 안에는 “상호 대응 조치”의 가능성이 언급돼 있었다. 그 조치에는 추가 관세 부과, 미항 정박 시 수수료 인상, 승무원 비자 취소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한 대표는 “경제적 압박뿐 아니라 개인에 대한 비자 위협이 동시에 있었다”고 밝혔으며, 또 다른 대표는 “미국을 경유해 귀국할 경우 제재를 받을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떤 나라에 어떤 압박이 통할지를 면밀히 계산한 움직임이었다”며 “이 정도 수준의 압력은 전례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협정 논의는 최소 1년간 미뤄졌으며, 많은 참석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있는 한 현실화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