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핵심 원자재를 관리하는 국제 기구를 만드는 것이 전 세계 공급망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주요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얻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세계 각국 간에 핵심 광물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유엔은 국가들이 협력하며 갈등을 피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최근 유엔은 ‘글로벌 미네랄즈 트러스트(Global Minerals Trust)’ 구상을 내놓았다. 이 신탁은 광물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국가들 및 관련 기업들이 함께 광물 비축분을 공동 관리하는 체계다. 이를 통해 공급 부족을 막고, 재활용을 촉진하며, 개발도상국의 생산을 지원하고, 친환경 기술 기업에 광물을 우선 배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통화 관리를 위해 마련된 브레턴우즈 체제처럼, 이번에는 녹색 기술을 위한 글로벌 자원 관리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긴장감이 높아지는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유엔 학술기관인 유엔대학교(UNU) 연구진은 자원에 대한 보다 협력적이고 지속가능한 관리 모델이 공급망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높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UNU 정책 보고서는 “접근 권한을 조정하고 자원을 공동으로 운영하며 사회적·환경적 보호장치를 내재화함으로써, 글로벌 미네랄즈 트러스트는 공정하고 순환적이며 분쟁 없는 광물 가치사슬을 촉진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자국 이익을 내려놓고 국제적 약속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광물 시장 조사기관 우드맥켄지의 금속·광업 부문 부회장 줄리언 케틀은 “성공하려면 주요 강대국의 참여가 필수지만, 이들은 위험 회피 성향이 강해 쉽게 나서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핵심 광물 수요가 2030년까지 3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방위산업,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에너지 전환이 자원 수요를 급증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심지어 청정 에너지 기술만으로 전체 수요 성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리튬과 코발트 같은 일부 광물은 청정 기술 분야가 현재 수요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스위스 배터리 제조사 르클란체(Leclanché)의 CEO 피에르 블랑은 “산업이 성장하고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광물 공급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수요 증가에 따른 경쟁과 자원 민족주의도 심화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간의 긴장이 가장 크다. 4월 미국의 고율 관세 조치에 대응해 중국이 특정 희토류 수출 제한을 단행하자, 포드와 일본 스즈키 등 전기차 제조사들이 생산을 줄이기도 했다.

개발도상국 중 상당한 광물 매장량을 가진 나라들도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은 가공 인프라 부족에도 불구하고 수익과 일자리가 자국에 남도록 하려 한다. 예를 들어 짐바브웨는 2027년부터 리튬 수출을 금지했고, 콩고민주공화국도 코발트 수출 금지를 연장했다.

르클란체의 블랑은 “오늘날 산업은 지정학적 결정으로 인해 공급망이 크게 불안정해지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안정성과 가시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협력이 점점 더 시급해졌다고 유엔 제안서 공저자이자 델라웨어대 교수 살림 알리는 지적했다.

알리는 “짐바브웨 사례는 문제의 한 단면이다. 글로벌 차원의 조정이 부족하다. 동서, 남북으로 나뉜 ‘클럽’만 존재할 뿐”이라며 “트러스트가 민족주의적 경향을 완화하고, 생산국이 안정적으로 신탁에 판매하며 소비국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혜택을 누리는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제 협력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있다. 6월 말 미국과 중국은 희토류 분야 협정을 체결해 미국 기업들의 중국 광물 접근성을 높였다. 며칠 뒤 미국, 호주, 인도, 일본 4개국은 ‘쿼드 핵심광물 이니셔티브’를 출범해 핵심광물 공급망 확보 및 다변화를 위한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는 ‘핵심광물 행동계획’을 발표해 공급망의 투명성, 지속가능성, 회복력을 증진시키려 한다. 알리는 중국의 참여가 중요한 만큼, 중국이 의장을 맡는 G20이 이런 구상을 추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무대가 될 것으로 본다. 또한 미국이 2026년 G20 의장국이기도 하다.

한편, 글로벌데이터(GlobalData) 분석가 마르티나 라베니는 주요 강대국들이 참여를 주저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녀는 “미국, 중국 같은 강대국은 광물 공급에 대한 통제권을 잃으려 하지 않고, 일부 국가는 광물 가격 결정과 협상력에서 권한을 포기하기 꺼린다”라고 말했다.

우드맥켄지의 케틀도 “5년 전에 바이든 행정부 초기이거나 유럽에 전쟁이 없고 경제성장이 활발했다면 이번 제안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에너지 전환 현장의 다수 제조업체들은 이 아이디어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르클란체의 블랑은 “산업계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길 원한다. 공급망의 복잡성 때문에 안정성을 요구한다”며 “이론적으로나마 글로벌 신탁이 그런 안정성과 위험 감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인 중국의 CATL(Contemporary Amperex Technology)은 국제 협력 강화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회사는 “순환 경제로의 전환은 단독으로 이뤄질 수 없으며, 산업과 지역 전반의 협력이 필요하다. 유엔과 글로벌 파트너와 함께 포부를 체계적 변화로 실현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국제 리튬 협회(International Lithium Association) 사무총장 롤랑 샤바스 역시 “전 세계 정부의 협력과 탈탄소 경제로 가는 길 가속화 노력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글로벌 미네랄즈 트러스트는 핵심 광물 공급망을 더 깨끗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알리는 “미국과 우크라이나간 체결된 협력 같은 사례들이 다자간 협약으로 확대되고, 지속가능성 지표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심각한 쟁점인 심해 채굴 문제에 대해서도, 이 조직이 근거를 확인하며 육상 채굴의 탄소 배출 감축과 연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알리는 설명했다.

그는 “목표는 저품위 광산 개발과 폐기물 증가, 비효율 지역 신광산의 난립을 막는 것이다. 전략적 비축은 임대 계약과 순환 시스템 도입 가능성도 열어준다”고 말했다.

라베니는 이런 신탁이 많은 개발도상국이 당면한 ‘채굴하고 수출하는’ 구조적 문제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특히 중국이 아프리카와 남미의 광물 조달과 가공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신탁이 해당 국가들이 자원 관리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현지 가공 역량도 지원받도록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요 강대국들은 가격 결정권과 자원 통제권을 쉽게 내놓지 않겠지만, 산업계의 핵심 광물 수요 증가로 인해 조정과 협력이 불가피하다고 알리는 밝혔다.

그는 “지구적 문제에 관해서는 대립 중에도 협력한 선례가 많다. 냉전 시기 남극조약이 대표적이다. 과학 연구 구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지금도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리더십과 비전이다”라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