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미국 내 풍력·태양광에 대한 반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왔다. 이제 그는 화석 연료 의제를 해외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화석연료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지키려 할 뿐만 아니라, 해외 국가들에게도 압력을 가해 기후변화 대응 약속을 완화하고 석유·가스·석탄 사용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는 공화당과 손잡고 전기차·태양광·풍력 지원 정책을 대폭 약화시켰으며, 이제는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지렛대로 삼아 관세, 제재, 각종 무역 조건을 활용해 다른 나라들까지 화석연료 소비 확대 방향으로 끌고 가려 한다. 특히, 유럽·중국·브라질 등지에서 급성장 중인 풍력 산업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며 “풍력은 국가를 파괴한다”며 되돌아가 화석연료를 써야 한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최근 행정부는 국제 해운 부문 온실가스 감축 합의를 지지하는 국가들에 대해 관세, 비자 제한, 항만 사용료 부과 등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또한 석유 기반 플라스틱 생산 제한 논의에서도 사우디 등 산유국 편에 서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유럽연합(EU)과의 무역 협상에서는 3년간 7,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석유·가스를 구매하는 조건을 내걸어 논란을 빚었다. 이는 EU의 탈탄소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전·현직 유럽 외교 관계자와 에너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이처럼 조직적·공세적으로 화석연료 확산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선 지난해는 기록적으로 가장 더운 해였고, 연이어 산불·폭염·가뭄 등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기후 위기 악화를 막으려면 석유·가스·석탄 사용을 과감히 줄이고 재생에너지 확대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과학을 조롱하고, 풍력·태양광 발전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영국·스코틀랜드 방문 시에도 풍력을 “사기극”, “참담한 재앙”이라고 표현하며 반감을 드러냈다. EU가 2050년까지 전력의 절반 이상을 풍력에서 공급하겠다고 밝힌 목표와는 정반대의 메시지다.
이번 행정부의 기조는 1기 집권 때와 달리 더 노골적이다. 과거에는 파리협정 탈퇴와 같은 ‘국제 논의 불참’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아예 다른 나라들이 기후 정책을 추진하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실제로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석유 수요 정점 예측에 반발해 탈퇴를 언급하거나,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미국의 이익을 해치는 기후 이념”이라 폄하한 사례도 있다.
대외적으로 추진하는 무역 협정 조건에서도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석유 구매가 거의 항상 포함된다. 한국은 1,000억 달러 규모 LNG 구매를 약속했고, 일본 역시 5,500억 달러 투자 및 미국 에너지 수입 확대를 계획 중이다. 알래스카에서 아시아로 가스를 수출하는 440억 달러 규모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런 압박이 전 세계의 에너지 전환 속도를 늦출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반면 보수 성향 싱크탱크 전문가들은 유럽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미국의 도움을 구하면서도 ‘녹색 에너지 투자’에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