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기업들이 앞으로 수십 년간 세계가 화석연료에 의존할 것에 대비해 탐사 활동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세계 주요 석유 기업들이 향후 수십 년간 화석연료 수요가 예상보다 더 오래 유지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신규 석유·가스 매장지 탐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BP, 셰브론, 엑슨모빌, 쉘, 토탈에너지스 등 글로벌 ‘빅오일’ 경영진은 최근 실적 발표 자리에서, 그간 재생에너지에 무게를 두던 전략을 조정해 매장량 확보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최근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재생에너지 개발 비용이 올라가고 속도가 늦춰지면서, 급속한 에너지 전환에 대한 기대도 한층 완화됐다. 지정학적 불안정성은 각국 정부가 탄소 감축보다 에너지 안보를 우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석유·가스 업계에 “드릴, 베이비, 드릴(마구 시추하라)”을 직접 주문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우드매킨지는 전환 속도가 느려질 경우, 2030년대 중반부터 예상보다 연간 약 5% 더 많은 석유가 필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추가로 1,000억 배럴 이상의 석유·가스가 탐사를 통해 확보돼야 수요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수요 증가 예상이 커지는 가운데, 지난 수년간의 투자 부족이 업계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들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드매킨지의 미주 탐사 부문 책임자 제시카 시오섹은 “석유·가스에 대한 매우 큰 추가 수요가 존재한다”며 “인수·합병만으로는 장기적인 공급 공백을 메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계가 2010년대 초반 이후 비용 절감과 신속한 재생에너지 전환에 집중하면서 탐사를 소홀히 한 결과, 이제 뒤늦게 매장지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24년 전 세계 신규 석유 발견량은 50억 배럴에 불과해, 이는 전 세계 연간 생산량의 19% 수준에 머물렀다(리스타드에너지 조사).
가장 급격한 방향 전환을 보인 곳은 BP다. BP는 2021년 이후 약 150억 달러를 투입하며 친환경 중심 전략을 추진했으나 투자자들의 반발을 샀다. 올해 2월 회사는 수익성과 매장량 확보를 위해 석유·가스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향후 3년간 40개 탐사정 시추를 계획하고 있으며, 브라질 해상에서 지난 25년간 최대 규모의 발견을 보고했다.
셰브론 역시 그동안 비용 절감과 셰일 자원 개발에 치중하다 최근 심해 탐사 등 더 위험한 프로젝트로 다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엑슨모빌은 지난 10년간 가이아나에 집중해 110억 배럴의 매장량을 확보했지만, 올해 리비아 해상 4개 광구 조사 계약을 체결했고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도 20여 년 만에 탐사를 재개할 예정이다.
토탈에너지스는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알제리에서 신규 탐사 허가를 획득하며 탐사 포트폴리오를 ‘재장전’했다고 밝혔고, 쉘 역시 멕시코만·말레이시아·오만 등에서 향후 6~12개월 안에 주요 탐사정 시추 계획을 예고했다.
리스타드 선임 애널리스트 팔조르 쉔가는 “에너지 전환은 진행 중이지만 속도는 예상보다 훨씬 느리다”며, 2050년에도 석유·가스가 글로벌 에너지 믹스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현재의 탐사 지출 규모는 2010~2015년 호황기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BP와 셰브론은 인공지능·최첨단 지질탐사 기술로 비용 증가 없이 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셰브론은 바다 밑에 배터리와 정밀 시계 등을 탑재한 소형 장비를 설치해 지진파 반사를 정밀 분석, 복잡한 지질 구조에서도 매장지를 찾고 있다. BP도 유사 기술로 아제르바이잔에서 복잡한 유정을 불과 며칠 만에 계획·준비한 사례를 소개했다.
우드매킨지의 업스트림 부문 책임자 프레이저 매케이는 “업계가 탐사를 늘리려면, 시추가 즉시 가능한 유망 지역을 더 확보하는 동시에 인력·기술 역량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