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업계 전문가들이 지구 온난화 대응 계획 초안이 ‘산업계의 견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셸(Shell)과 주요 에너지 기업들이 ‘넷 제로’ 배출 목표 기준을 만들기 위한 6년간의 노력을 중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입수한 문서에 따르면, 이 기준이 새 유전과 가스전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는 조건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기업들이 자문기구에서 잇따라 탈퇴한 것이다.

셸, 노르웨이의 아커 BP(Aker BP), 캐나다의 엔브리지(Enbridge) 등은 지난해 말 이후 글로벌 기업 기후 목표 인증기구인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SBTi)’의 전문가 자문단에서 모두 물러났다.

FT가 확인한 기준 초안에는, 기업들이 SBTi에 기후 계획을 제출한 이후 또는 2027년 말 중 빠른 시점부터 새 유전과 가스전 개발을 중단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석유와 가스 생산량도 크게 줄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SBTi 측은 ‘역량 문제’를 이유로 해당 석유·가스 기준 작업을 현재 일시 중단했다고 밝혔으나, 업계 인사들의 탈퇴와는 관련 없다고 부인하며 “사실에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번 주 발표될 예정이던 금융기관 대상 가이드라인도 완화되어, 신규 석유·가스 생산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및 보험 중단 시점이 기존보다 늦춰져 2030년으로 조정됐다고 FT 소식통이 전했다.

이 같은 결정은 올해 3월 새로 임명된 SBTi 최고경영자(CEO) 데이비드 케네디(David Kennedy)의 리더십 아래 이루어졌으며, 전 EY 파트너 출신인 그가 명확히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SBTi는 공공, 금융기관, 비영리단체, 학계, 산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신뢰할 만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엄격한 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는 영향력 있는 자발적 기구로, 애플(Apple)부터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까지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자사의 기후 전략 인증을 위해 참여해 왔다.

화석연료 사용이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난화의 주원인으로 지목되며, 전문가들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해야 생태계 피해 및 극심한 기상 이변에 따른 인명·경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셸은 2019년부터 SBTi 자문단과의 협력을 이어왔으나, 2030년 감축 목표를 후퇴시키고 2035년 목표는 지난해 폐기했음에도 2050년 ‘넷 제로’ 달성 의지는 유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셸은 초안 기준이 “산업계 입장을 실질적으로 반영하지 못했다”며 전문가가 자문단에서 철수한 이유를 설명했다. 회사 측은 이 기준이 사회 현실을 ‘현실적’으로 반영하면서도, 기업들이 2050년까지 넷 제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적절한 유연성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커 BP는 자문 기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탈퇴했으며, 이는 “기후 행동 의지 부족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엔브리지 역시 계속해서 “실용적이고 건설적인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SBTi는 이들의 탈퇴 이후 석유·가스 관련 기준 작업을 ‘우선순위에서 낮추겠다’고 자문단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까지는 이 기준 작업이 “최우선 과제”라고 공언해 왔었다.

한 관계자는 “작업이 지체될수록 대형 석유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요약하면, 글로벌 기후 목표 기준을 주도하는 SBTi가 새 유전·가스전 개발 금지를 포함한 엄격한 넷 제로 기준 마련 과정에서 주요 에너지 기업들의 반발과 탈퇴를 겪으며, 관련 기준 작업을 잠정 중단하고 금융기관 가이드라인도 완화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 있는 상황이다.